비지엠
낭랑 18세 김서연 군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다. 고딩 때부터 근사한 여자친구를 사귀어, 탄탄대로를 밟고 30살 이내에 참한 아내를 맞이하여 황혼까지 같이 오순도순 사는.. 그러나 지금.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끝난 지금. 나에게는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그건 바로–
어쩐지 내 청춘 로맨스코미디는 잘못됐다 —가끔씩 툭하고 일본어로 부끄러워하는 옆자리 영훈양—
아아. 다들 안녕들 하신가? 우선 등장인물을 소개하겠다.
남자주인공
이름 : 김서연
나이 : 18세 (실제 나이는 25년 기준으로 21살.. 크흠!)
성별 : 남자 (실제 성별은 여자라는.. 크흠흠!)
키 : 180
몸무게 : 아아.. 비밀이다.
여자주인공 【메인 히로인】
이름 : 김영훈
나이 : 18세 (실제 나이는 25년 기준으로 29살.. 크흠!)
성별 : 여자 (실제 성별은 남자라는.. 흠.)
키 : 185
몸무게 : 65 (추정?)
등장인물 소개는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우선 이 독자–편의상 독자라고 하겠다–들에게는 내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 일단 나는 대한민국 상위권 초엘리트명문고인 똥꼬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교 2학년 중간고사를 말아먹고는 살며시 우울한 상태다. 보다시피.. 뭐 평범한 학생이다. 취미는 애니 보기. 최근에는 드래곤이 메이드짓을 하는 애니메이션에 홀릭 중이다. 크흠..! 뭐 이 정도면 충분히 내 배경은 이해가 갈거라 믿는다.(물론 똑똑한 우리 독자에게만 한정된 거겠지만?)
그러나 이런 평범한 나에게 큰 문제가 닥쳐왔다. 그 재앙은 중간고사가 끝난 바로 다음 주, 나에게 밀려왔다. 폐쇄적인 고등학교에서 전학생의 등장은 절대적이다. 대공의 수호자 봉고레 링, 골드 딱지, 푸른 눈의 백룡.. 잔잔한 호수에 짱돌을 메다꽂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본격적인 내신 관리에 들어갈 2학년 때에 전학을 오는 건 쉽지 않다. 큰 사고를 친 게 아니라면.. 그렇기에 폭풍의 전학생은 온갖 소문들을 몰고 다녔다. 전학교에서 사람을 담갔다느니, 본토 야쿠자 아들이라느니, 국정원 요원이라느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추론들이었으나 당시에는 꽤나 선풍적이었다. 학교 학원 집을 뺑뺑이 도는 학생들에게 도파민을 주는 건 흔치 않았다.
왜 꼭 영화 속 해커들은 선수 등장~ 하면서 들어올까?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엔간한 조연이 아니거든. 언젠가는 주인공에게 큰 도움을 주니까. 그러니까 우리 폭풍의 전학생은 선수 등장~이라는 말은 긴 다리로 했고, 자기소개 먼저할까요? 나는 예니콜이라는 말은 얼굴로 했다. 그 순간 나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꼭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가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국어 교과서 뒤에 라노벨을 꽂아 읽던 나에게 폭풍의 전학생이란 큰 충격이었고 새로운 김서연 ver2 탄생의 순간이었다. 전학생은 엔간한 조연이 아니었다. 주연이었다. 그것도 청룡영화제에서 대상을 탈만한 주연.
〔평범한 학생〕들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일반인 기준에서는 글쎄.. 연예인이 들어온 기분이었겠지. 나에게는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였다만. 크흠! 암튼 이건 넘어가고.. 잔잔한 똥꼬고등학교에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던져진 전학생은 비어있는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여기서 독자와 나는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사실 난 극 i고 관심받는 걸 극도로 꺼린다.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면 얼굴부터 빨개지고 손을 달달 떤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그래서... 그래... 전학생이 존나 부담스러웠다.
"안녕, 1년 동안 잘 지내보자."
"어? 아... 응... 그래." .oO(아 이거 아니라고!!! くそ!!)
"우리 일교시가.. 국어구나? 교과서 같이 봐도 될까?"
"어어...." .oO(젠장!! 잘 보여야 하는데.. 이런 히로인에게..)
전학생이 자꾸 힐끗거렸다. 좇부담. 그 동글동글하고 큰 눈이 자꾸 나를 보니까.. 부담스러워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척수반사 같은 거다. 독자들은 나를 찐따같다고 매도하지 말도록.
"화장실. 화장실을 가야겠어.."
"수업 곧 시작하는데?"
"알아 시발.."
ㄱ–;;; ← 김서연 표정
^_^? ← 김영훈 표정
로댕형!! 아니 시발 로댕형!! 로댕형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나갔어? (로댕형:그냥 존나 고민했지 모ㅋㅋ)
생각하는 사람처럼 변기 뚜껑 위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에게 닥친 문제점을 정리해 보자.
• 첫 번째, 전학생의 등장—해결책 : 없음
• 두 번째, 나의 찐따력—해결책 : 없음
• 세 번째, 그냥 이 상황—해결책 : 졸업
→ 결론 : 그냥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
진격의 칼날 주인공 에렌 예거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귀멸의 거인 주인공 탄지로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 아니야. 그럼 평범한 학생 김서연은 이런 상황을 예상했겠냐고.. 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사건들은 이어진다. 화장실 맨 끝 똥칸에서 힘차게 나와, 다시 교실로 향했다. 첫 번째 걸음은 당당히, 두 번째 걸음은 단단히, 세 번째 걸음은 닥닥... 다그닥.... 너무 긴장해 다리가 풀린 나머지, 나머지 걸음은 네발로 기어갔다.
나의 폭풍의 짝꿍은 똥칸에 있던 내가 더럽지도 않은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줬다.(여기서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 토르가 보였다.) 서연아 너도 만화 좋아해? 나도 만화 좋아하는데! 응... 쪼끔 봐. 헉 그럼 너 적안의 샤나도 봤엉? 나 그거 진짜진찌 좋아행!! 그게 뭔데? 아 적안의 샤나 몰라..? 어...?(솔직히 여기서 존나 당황했다.)어... 그랭? 알았쏘...
방금 뭐지 시발... 러블리즈 팬인 국어선생님이 들어오자, 입술이 댓빨 튀어나와 바닥과 곧 키스할 예정인듯한 영훈이의 입술이 쑥 들어갔다. 짱구도 아니고 사람 입술이 저럴 수가 있구나.. 아무쪼록 전학생이 오고 나서는 온전한 내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사실 개많이– 국어 선생님의 수업은 재미있지만 유익하지는 않다. 국어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무렵 수행평가를 공지했다. 중간고사 끝나고 딱 기강 풀렸을 때 ㅁㅊ수행평가로 잡도리하셨다. 수행평가 공지를 듣던 짝꿍은 알아듣지못할일본어를 중얼거리더니 날 보며 울상을 지었다.
!수행평가 공지!
교과서 내에 실린 문학 작품을 분석하여 ppt를 제작, 발표.
더 궁금한 내용은 국어선생님께 ^_^~
"있잖아.. 교과서 한 번만 빌려주면 안될깡.."
"그래"
"어? 진짜? 근데 그러면 너가 못하자나.."
"무슨 소리지?"
중딩때부터 포스타입을 보며 문학작품을 섭렵한 나에게? 내가 멍청하게 눈을 끔뻑거리자 영훈이 힝..소리를 냈다(살면서 저딴 소리를 입 밖으로 내는 사람은 진짜사나이 혜리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니, 나 문학작품(포스타입)도 많이 읽고.. 난 천천히 해도 돼... 그러자 짝꿍은 두 눈알을 축축이 적시고는 내 가방을 가리켰다.
"그치만.. 라노벨은 문학 작품이 아니야 서연아.."
"오우시발;;"
한방 먹었다. 내 짝꿍은 몸은 비리비리해 보여도 아가리에 파퀴아오형을 데리고 사는구나...
(중략)
남자가 빵랑할때엔 꼭 항상 곁에 머물면서 늘 해주고 싶은 게 참 많아 빵랑에 빠질 땐 내 삶의 모든 걸 다 주고서 단 하나 그 맘만 바래.. 여전한 아이돌스타 인피니트형들의 노래 가사를 되새겼다.
고백 d-day. 드디어 날이 왔다. 일단 씻었고, 교복 다려 입었고, 암튼 마음의 준비도 다 끝냈고. 평소보다 일찍 김영훈을 교실로 불러냈고 모든 게 완벽했다. 이제 고백만 잘 끝내면 된다.
교문을 통과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 박동 비트에 빈지노가 가사를 쓰고 그 위에 얹으면 노래가 완성될 법했다. 교실 문을 열기 전.. 나는 떠올렸다. 지독한 회피형의 나날들을. 그러자 전두엽이 번쩍거리면서 떠오른 좋은 아이디어가 내 뇌를 휩쓸었다. 그건 바로 run、런 치는 거다. 도망가자. 도망가야 돼. 여기서 내가 뭘 해.. 고백하면 뭐 어쩔 거야. 사귈 거야? 아니잖아... 교실 문 앞에서 쌩지랄하는 사이 영훈이는 이미 교실 안에 있는지, 책상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냥 하자. 그냥 뱉고 존나 어색해지면 돼.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돌리니 보이는 풍경은— 동그랗다.. 그게 아니라 진짜 모든 책상들이 둥그렇게 크게 원을 만들었고 그 안에 김영훈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사고방식이 정지됐다. 그게 꼭 흑마술이나 흑마법 의식하는 모양 같았다.
"뭔. 뭐야 이거? 너 여기서 뭐 했어 시발?"
"왔엉?"
"뭘 왔어?야... 너 이거 뭐야? 너가 만들었어? 어?"
"ㅎㅎ 심심해성"
두 번 심심했다가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만들겠네. 별생각 없이 중얼거린 건데 영훈이 꺄르륵 웃어댔다. 의자에서 일어난 영훈이 내 팔을 잡고 원 중앙으로 질질 끌었다. 나는 멀뚱히 세워놓고는 본인은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살포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무릎 위로 올려둔 채로. 여기서 내가 뭘 해?.. 전의가 모두 상실됐다. 이미 이런 건 체념한 지 오래다. 이건 또 무슨 상황극이야? 조용히 물으니 오른쪽 눈 한쪽만 뜬 영훈이 눈썹을 까딱였다. 얼른 얼르은 고백 해. 나 준비 됐엉.
"아니 영훈아 정신 차려. 지금 이 구도 존나 폭력적이야... 너 시발 악마 소환하니"
"얼른!!!!!!!!!!!" ← 거짓말 아니라 교실 천장 뚫리는 줄 알았다.
죄송한데 이거 상황극이에요?
"아 빨리 하라고!!!!!!!!!!" ← 학교 터지는 줄 알았다.
"알았어 제발 진정해. 너 때문에 여기 뒷 아파트 할아버지도 벌떡 일어나겠다;;;"
큼큼!! 목을 가다듬고 뒷짐 지고 섰다.
"영훈 내 여자니까. 영훈 내 여자니까.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여기서 잠깐, 독자와 나는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일단 나는 음치 박치 몸치–3치 트리플크라운 보유한 인류최악의 보컬머신이다. 그러니 빵랑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아주 멍청하게 노래로 고백하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내 빵랑의 세레나데를 듣던 영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내 빵랑의 세레나데가 도저히 못 들어줄 수준이었는지 영훈이 벌떡 일어났다. 두 눈이 감정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감동, 감격 이런 감정이 아니라 원망, 분노, 수치심 같은 감정.... 야! 김서연! 너 노래 존나 못 부르네!! 찐따목소리 1급 자격증 보유자 김서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네.. 네... 대답했다. 기차화통을 몇 개를 삶아 처 드신 건지 발성이 뮤지컬배우 씹어드시는 영훈쨩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아오 답답해 너 나 좋아 싫어"
"좋. 좋아. 좋아...... 좋아하니까 이지랄하는거지.."
"좋지"
"네... 네 좋아해요.."
"그러면 오늘 수업 끝날 때까지 근사한 고백멘트 짜 와. 강철의 연금술사 같은 멘트"
"네? 아.. 네. 한번 짜볼게요. 한번해볼게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고죠 훈토루가 영역전개를 회수하자 숨이 트였다. 헉... 헉.... 고죠 훈토루가 성큼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붙잡았다. 서연앙, 우리 이거 책상 치워야됑.
30개가 넘는 책상을 하나하나 오와 열이 맞도록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포스타입으로 사랑을 배우는 건 실전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구나.. 역시 내 청춘러브코미디는 잘못된 것 같다.